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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비즈니스 그리고 도핑

하이파킹정보 2023. 5. 4. 00:02

스타, 비즈니스 그리고 도핑

1980년대 초에 달리기와 육상은 서구에서 엄청난 관심을 끌었다. 조깅의 대유행은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이 분야의 스타들에게 쉽게 감정이입을 하게 되었음을 의미했다.

 

마른 체구에 불끈 솟아오른 혈관들로 뒤덮인 다리, 가벼운 홍조를 띤 달리기 선수의 전형적인 모습은 사람들에게 이상적인 육체상으로 받아들여졌다. 광고 모델들은 마치 달리기를 하러 나갔다가 막 들어온 사람처럼 보였다.

 

그들은 살짝 땀에 젖거나 아니면 막 샤워를 마치고 나온 모습이었고, 건강한 폐에는 신선한 공기가 가득 채워져 있을 것 같았다.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는 모델들이나 대중잡지의 미녀 모델들은 운동선수처럼 보이는 사람들로 대체되었고, 심지어는 록 스타들 까지도 외모를 유지하고 그들의 거친 삶을 더 잘 버텨낼 수 있도록 달리기에 나섰다.

 

비즈니스 그리고 도핑
비즈니스 그리고 도핑

최고의 주자들은 오랫동안 민중의 영웅으로 남았다. 뉴질랜드의 존 워 John Walker, 영국의 시배스천 코sebastian Coe, 미국의 칼 루이스Carl Lewis 같은 역대 최고의 육상 스타들은 스포츠의 영역을 넘어서는 폭넓은 호소력을 지닌 사람들이었다. 여성들은 그들의 외모와 균형 잡힌 다리를 좋아했고, 남성들은 그들처럼 되고 싶어 했다.

국가를 상징하는 검은 띠를 두른 존 워커는 마지막 전력 질주에서 물결치는 긴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놀라운 속도를 낼 수 있는 선수였다.

 

언뜻 예수를 연상시키는 외모 덕분에 달리기의 아이콘이 된 워커는 단지 시합을 즐기는 야망 있고 재능 많은 젊은이일 뿐이었지만, 대중의 눈에 비친 그는 유명 배우들에 버금가는 아우라를 지니고 있었다.

그는 주 종목인 중거리 달리기에서 적수를 찾을 수 없을 만큼 빼어난 슈퍼스타였지만, 대중의 섹스 심벌이기도 했다. 1970년대에 이에 필적하는 위상을 얻은 또 다른 스포츠 스타로는 스웨덴의 테니스 선수인 비외른 보리Björn Borg 정도가 있을 뿐이다.

1975년 예테보리Gothenburg에서 존 워커가 3분 39초 4를 기록하며 1마일 종목에서 세계신기록을 수립했을 때, 그는 하루 종일 전 세계의 기자들과 전화 통화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최고의 주자들은 이 대륙 저 대륙을 오가며 전 세계를 여행했다. 그들은 여름에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 오세아니아에서 겨울을 보냈고, 그런 다음에는 미국으로 갔다가 거기서 다시 유럽으로 건너갔다. 유럽에서는 1980년대가 시작되면서 전에 없던 많은 대회들이 활발하게 개최되었다.

1980년을 전후로 매해 여름마다 약 200개의 국제 육상 대회가 서유럽에서 개최되었다.

 

도로 경주와 크로스컨트리 경주를 포함한 각종 육상 대회의 수는 급격히 늘어났고, 여러 스타들이 도처에서 열리는 각종 대회에 초청되어 영예를 높여주었다. 1980년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소위 아마추어 육상 선수들에게 돈을 지불하는 것이 허용되었다.

여기서 아마추어들이란 올림픽 대회에 참가하기를 원하는 운동선수들을 말한다.

 

1982년에 국제 육상 연맹IAAF,Intermational Association of Athletics은 아마추어 정신에 대한 색 바랜 자체 규정에서 탈피했다. 유망선수에게 지원되는 국가 차원의 기금 조성이 1985년부터 허용되었고, 국제 대회의 상금도 허락되었다.

 

이전 10년의 세월은 '검은 돈' 의 지속적인 몸값 상승으로 얼룩졌다. 주최 측은 대회 출전료와 공짜 비행기표를 제공하고 아마추어 규정을 교묘하게 피해가며 선수들에게 돈을 지급했던 것이다.

 

육상 관계자들은 당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취리히 같은 곳에서 열리는 큰 규모의 유럽 육상 대회에서 참가 선수들은 대회가 끝난 후 자신들의 몫을 챙기기 위해 줄 서서 기다리는 일에 익숙했다. 선수들마다 가격표가 정해져 있었고, 씀씀이가 후한 주최자들은 인기가 있었다.

 

그런 흥행사들은 매년 최고 수준의 선수들을 대회에 참가시킬 수 있었다. 동유럽에서는 가끔 서방에서 환전하기 어려운 화폐로 돈이 지불되기도 했다.

 

반면에 루마니아나 소련 출신의 주자들은 돈을 달러로 지급받게 되면 뛸 듯이 좋아했는데, 달러를 갖고 있으면 고국으로 돌아가서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상점에 출입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불법적인 보수 지급 체계하에서 주최 측은 교묘한 수단을 이용해 돈을 전달했고, 은행을 통한 현금 이체는 삼갔다.


현금 가방을 들고 여행을 다니면서 유럽 각국의 은행에 계좌를 열어 재산을 분산 예치하는 세계기록 보유자들도 있었다.

 

어떤 특이한 케냐 선수는 대회에 출전할 때마다 754달러를 요구했는데, 언뜻 보기에는 아무렇게나 부른 별 의미 없는 액수 같지만, 실제로는 고향의 소 한 마리나 땅 한조각 값에 상응하는 금액이었다.

 

가축들이 불어나고 농장이 커진다는 생각에 고무된 그는 자기 자신과 가족의 미래를 보장하기 위해 자주 시합에 나섰고, 유럽 투어 대회에 닥치는 대로 출전해 많은 돈을 벌게 되었다.


1980년대를 거쳐 90년대를 지나면서 육상 스타에게 지불되는 액수는 점차 커졌다. 운동선수와 후원자의 이해관계가 깊어지자 미디어의 관심도 커졌고, 돈에 점점 더 사람들의 주의가 집중되는 현상은 인기 스포츠 종목 전반의 특징이 되었다.


1980년대에는 또한 계약을 주선하고 협상하는 육상 전문 에이전트들도 등장했다.

 

이런 전문 직종이 등장했다는 것은 최고의 육상 선수들이 대회에 출전하고 평판을 쌓으며 자신들의 시장가치를 높이기 위해 이제 중개인들에게 의존하게 되었음을 의미했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늘 좋은 것만은 아니며, 최고 수준에 오른 일부 선수들조차 후원사에게 사기당하는 일이 벌어지곤 했기 때문에 협상 테이블에서 도움이 필요했다.

마라톤을 개최하는 대도시들 간의 경쟁 또한 주자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주최 측은 일류 선수들 가운데서도 특별히 선호하는 선수가 있고, 가끔은 특정 선수가 우승하기를 원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바로 그 특정 선수가 대회의 주 후원사에 고용되어 있기 때문이다. 도로 경주나 트랙 경주 모두 테이블 밑에서는 남모르는 게임이 은밀하게 진행되곤 한다.

우승자로서 자신의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 주자들은 특정 경쟁 선수가 참가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자기가 출전할 대회를 입맛에 맞게 고를 수 있다.

 

만약 주최 측이 세계기록을 희망하고 있다면, 한두 명의 페이스메이커들도 협상 조건에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 선호하는 방식은 그 우승 후보자와 같은 나라 혹은 같은 그룹 출신의 한두 명을 경주에 투입하는 것이다.

 

협상은 선수들, 주최 측, 후원사들, 텔레비전 방송국 모두에 유리한 무대를 만들어가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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