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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하기 종식 이후 사냥과 채집 활동의 전문화

후기구석기시대 말기에 유럽의 많은 지역에서는 사냥 문화가 전성기를 구가하며 널리 퍼져 있었다. 기원전 1만2500년경에는 기온이 다시 조금 올라가면서 빙하기가 서서히 끝을 향했다.

 

이때 순록 사냥을 전문으로 하는 신생 집단들이 서유럽에서부터 북독일 평야지대로 진출했다. 이곳은 사람이 살기 힘든 환경이어서 아직 아무도 살지 않던 지역이었다. 이 사냥 집단들은 이미 수천 년 전부터 그래왔듯이 특징적인 야영 장소를 남겼다.

빙하기
빙하기


이 야영지들은 순록 떼의 봄가을 이동 경로를 따르고 있었다. 즉 사람들은 동물의 계절별 행동 습관을 잘 알고 있었고 이로 짐작건대 자연을 매우 정확히 관찰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런 지식을 보유한 사냥꾼이라면 짧은 시간 안에 많은 포획물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런 사실을 증명해주는 곳 중 하나가 함부르크 주변에서 발견된 유적지이며, 이런 사실 때문에 빙하기가 끝나갈 무렵 북독일에 살았던 순록 사냥꾼들의 문화를 함부르크 문화라고 부른다.

 

이는 또한 마그달레니아 문화가 끝나가던 시기 그 북쪽 지역에 인접해 있던 문화다. 마그달레니아 문화와 달리 함부르크 문화는 예술 표현 제작물이 훨씬 적었다. 더욱이 그나마도 완전히 다른 스타일을 갖고 있었다.

즉 마그달레니아 문화가 실사에 가까운 동물 표현을 했다면 북쪽 함부르크 문화인들은 기하학적 무늬와 추상적 형태를 더 선호했다. 점으로 콕콕 찍거나 새겨서 그린 각진 띠무늬, 직선을 좁은 간격으로 규칙적으로 배열해 일정한 크기의 면이 되게끔 만든 무늬, 그 외 기하학적 모티브가 사용되었다. 이따금 동물이나 인간 형상도 볼 수 있지만 이는 매우 단순한 형태로 표현되어 '선으로만 그린 사람' 모양을 하고 있는 정도다.


그 밖에도 뿔로 만든 표현물이 발견되었는 데, 그중에는 추상적 대상을 조각한 것처럼 보이는 것도 있었다. 또 뿔 막대기에 인간 형상 가면과 동물 형상을 표현한 것들도 있었다. 동물 형상의 경우는 여러 동물 요소를 얕은 부조로 조각하여 평면적인 장식이 되도록 했다.

기원전 1만2000년 이후의 기후와 환경에는 다시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 약 1000년에 걸쳐 점점 따뜻해지고 습해졌다. 중부 유럽 삼림지역은 자작나무와 유럽 소나무를 중심으로 다시금 상당한 크기로 확장되었다.


수목 사이가 성긴 이런 숲에서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조성을 가진 동물상이 형성되어 말코손바닥사슴, 붉은사슴, 여우, 비버 등이 서식했다. 이에 비해 숲이 없는 트인 벌판을 더 선호하는 야생마와 순록은 훨씬 줄어들었다.

함부르크 문화인은 자연환경의 이러한 변화에 잘 적응해나갔다. 이들은 빙하기 시절에는 주로 순록과 말을 사냥했지만 이제는 말코손바닥사슴과 붉은사슴을 사냥하는 데 전문가가 되었다.

 

기후, 자연환경, 이에 따른 동물상의 변화는 인간에게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구석기시대부터 있어왔던 집단 몰이사냥은 한 번에 매우 풍족한 식량을 얻게 해주었지만 이제는 거의 불가능해졌다. 순록이나 야생마처럼 떼를 지어 다니는 동물이 더 이상 충분히 서식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냥은 다시 아주 개별화되었다. 하지만 사슴이나 말코손바닥사슴과 같이 개별적으로 다니는 짐승을 잡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이에 따라 인간은 사냥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새로운 사냥 무기를 필요로 하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중부 유럽 거의 전역에서 활과 화살을 사용하게 되었고 결국 후기구석기시대의 투창가속기를 완전히 대체하기에 이르렀다.

 

상당히 멀리 떨어진 거리에서도 특정 목표물을 겨냥해 효과적으로 사냥할 수 있도록 해주었던 투창가속기는 빙하기 후기에 대형 포유류가 멸종하게 된 원인으로 꼽힌다. 하지만 울창한 삼림에서 투창가속기는 무용지물이었다.

이렇게 보면 마지막 빙하기 말, 유럽 대부분 지역에 다시 숲이 들어서기 시작하는 시기에 활과 화살이 발명된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고 할 수 있다. 화살은 나무로 만든 화살대에 형태가 각기 다른 작은 규석 화살촉을 장착시켜 사용했다.

 

이 새로운 사냥 기법은 혼자 다니며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 짐승을 사냥할 때 먼거리에서도 놀라운 적중률을 보인다는 장점을 갖고 있었다.

 

여기서 관찰되는 한 가지 사실은 화살촉에 사용되는 돌의 질이 시간이 지나면서 현저히 떨어진다는 점이다.

 

연구자들은 그 원인이 당시 식량 조달에 이전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할애 해야 했고, 따라서 질 좋은 돌을 얻는 데 더 이상 시간을 많이 쓸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추측한다.

 

예술 창작품이 감소하는 이유 또한 비슷하게 설명할 수 있다. 즉 이러한 까닭으로 조상들이 제작했던 높은 수준의 자연스러운 표현 대신 훨씬 단순하고 기하학적인 스타일이 주를 이루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따금 마그달레니아 문화 예술전통의 명맥을 이어나간 대상물도 드물게 발견된다.